죽을라 카는데 병원에서 못 죽게 붙잡아

in #life7 years ago

1928년생, 올해로 90세가 되신 우리 외할아버지.
매주 2회 신장투석하러 병원에 다니면서도 담배 태우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와 같이 병원에 다녀오는 길.
할아버지 표정이 영 좋지 못하시다.

"어디 안 좋은 곳 있으세요 할아버지?"
"......"

어머니가 또 물으신다.

"아부지 왜 그래? 어디 펺찮으셔? 속 불편해?"
"야야 그만해라. 병원에서 안 놔준다카이."
"응?? 그게 몬 소리야 아부지? 병원에서 뭘 안 놔줘?"
"야야 죽을 때 되면 죽어야지 몬 죽게 계속 살려논다 안하나. "

엄마랑 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서 상황을 슬쩍 넘겼지만..
자꾸만 할아버지가 그 말을 곱씹으신다.
할아버지랑 같이 점심 먹기로 약속한 이모님이 오셨다.

"아빠 병원에서 뭐래? 투석 안 힘들었어? 아부지 표정이 왜 그래?"
"야야 고만해라. 죽을라 카는데 병원에서 몬 죽게 자꾸 붙잡는다."
"아니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을 때가 안 댔으니까 그렇지."
"대따 고마."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여유가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100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병들고 노약한 환자들을 병원에서 자꾸만 살려는 놓지만 ..
살려만 놓았다. 하긴.. 병원의 역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찾는다면 꽤 큰 의미가 되지만..
그 분들에게 사는 것이 즐거울까...?

내 탓을 하자면 내 탓이고..
나라 탓을 하자면 나라 탓이고..
여기에도 해답은 없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뵈러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