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낡은 연습장 [완결]

in #kr7 years ago (edited)






낡은 연습장 표지.jpg


- 인사말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진정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소흘히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이나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하면서 집에만 오면 가족들은 편하니까 쉽게 대하다 보니 그런 실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소흘히 행동하다가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정신차리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대해보자고 다짐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지금 따로 듣고 계신 노래가 없다면, 이 잔잔한 노래와 함께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 본문



매형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자살했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매형은 침착한 목소리로 욕조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했다는 말을 하며 병원 주소를 알려주었다. 믿기지 않아 전화를 끊고 나서도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손에 잡히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와 병원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뒷좌석에 앉아 빠르게 움직이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어렸을 적, 나에겐 누나가 있었다. 금술이 두터웠던 부모님 덕분인지,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80년대여서 첫 아이로 딸을 낳은 어머니가 할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아들을 낳고 싶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곧바로 임신해서 나를 낳았고 그렇게 한 살 터울의 남매 사이가 탄생했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누나를 나는 어떻게 느꼈을까? 그저 항상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공기나 빛, 햇살과 별 같은 존재로 여겼었던 것 같다. 작은 시골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누나와 난 항상 같이 다니며 놀았다. 논두렁에서 올챙이를 잔뜩 잡아다 유리병에 집어넣고 집에 와서 장롱 이불 속에 넣었다가 어린아이의 악력으로 잠기다 만 뚜껑이 열리면서 흙탕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어머니에게 혼날 때도 옆에 꼭 붙어서 손을 들고 벌을 섰다.



그런가 하면 가끔 집안에 찾아오신 손님들이 사오곤 했던 과자 박스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슈퍼에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안에 여러가지 과자와 젤리, 사탕 등을 집어넣어 패키지로 파는 과자 박스가 있었는데 어느 집을 방문하건 아이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 과자 박스 안에는 버터맛이 나는 버터스카치 사탕이 있었는데 우리 남매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이었다. 그 사탕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사탕 봉투가 찢어지는 바람에 마치 팝콘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사탕을 바라보며 배가 터져라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누나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금 더 나은 교육 여건을 위해 정들었던 시골 집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갔다. 누나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짓궂게 장난치는 또래 남자아이들을 가만두지 않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을 휘둘러 코피를 터뜨리고 울게 만들 정도로 강한 아이였다.

오죽하면 누나를 끈질기게 놀리던 한 남자아이의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두 아이가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으니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자아이가(지금은 아저씨가 다 되었겠지) 누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양측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나와 그 남자아이의 사이는 진척이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의 작은 4인승 자동차를 타고 고향까지 4~5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이동했다. 긴 시간동안 뒷좌석에 앉아 따분함을 견디지 못한 나와 누나는 미리 챙겨온 연습장을 꺼내 들어 작은 손가락으로 연필이나 볼펜으로 낙서를 하곤 했다.

난 주로 졸라맨 같은 사람을 그리거나 똥을 그리면서 낄낄댔는데, 반면 꽃이나 이쁘장한 여자 얼굴을 그렸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은 우리 가족의 그림이었는데, 가족의 띠에 맞춰서 그리는 게 포인트였다. 아버지는 말띠니까 커다란 말을, 어머니는 쥐띠니까 작고 귀여운 쥐를. 누나는 소띠니까 멍청한 눈을 가진 소를, 난 호랑이니까 크고 강한 호랑이를 그렸지만 서툰 실력때문에 도리어 우스꽝스러운 호랑이가 나올 뿐이었다. 서로 그린 바보 같은 동물 그림을 보면서 또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앞 좌석에 앉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낯선 산길 속 익숙한 집이 보이면서 긴 여정의 목적지에 도착해 할머니가 차려준 푸짐한 저녁상을 먹었다. 그랬었다.



누나는 성장이 빠른 편이었다. 14살이 되어 중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엔 반에서 두 세 번째로 키가 컸다. 어느새 봉긋 가슴이 솟아오르고 얼굴도 성숙해져 점점 미인상을 띠었다. 공부도 잘해서 담임 선생님의 칭찬이 자자했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100점짜리 시험지와 상장을 집으로 잔뜩 가져왔다.

가족끼리 외식을 가거나 친척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어른들은 하나같이 누나가 이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쯤부턴 나도 누나와 사이 좋게 지냈었다. 이쁜 누나가 좋기도 했고 여러모로 강한 누나와 달리 성격과 체력이 약했던 나는 누나와 노는 것이 가장 편했었다. 누나는 용과 요정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여자처럼 생긴 남자와 여자가 옥신각신 다투는 순정만화를 보여주며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좋다며 한참을 떠들곤 했다. 난 그저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택시가 급정거를 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몸이 앞으로 쏠리며 앞 좌석 머리 받침대에 이마를 부딪혔다. 기사는 창문을 열고 앞에 선 차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른 뒤 나를 돌아보며 형식적인 사과를 했다. 아직 병원까지는 좀더 가야했다.



사춘기가 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10대의 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곤 하는데, 누나는 유독 그 변화가 심했다. 어여쁜 외모와 달리 걸걸하고 급한 성격이었던 누나는 고등학교에 가서는 영 기를 피지 못했다. 같은 반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집에만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시끄럽게 틀어놓고는 나오지 않았다. 성적도 점점 떨어졌다. 나보다는 엄마와 조용히 속닥거리는 대화가 늘어났다.

당시의 난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게임이 잔뜩 빠져 있어서였다. 난 제법 게임을 잘 하는 편이었고 반에서 끝자락에 겨우 걸친 성적과 달리 게임만큼은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친한 친구는 거의 없었지만 게임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나 역시 사춘기였을까? 가족이야 어찌되던 큰 상관이 없었기에 누나와 나의 사이는 서서히 멀어졌다.



내가 고3이 되어 한창 수능시험 준비를 할 무렵, 누나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 전교 순위권에서 놀던 것에 비하면 수능 성적은 반토막 수준이었고 수도권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지방의 그저 그런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누나는 더욱 의기소침했다. 여중 여고를 거쳐와서인지 남자를 특히 어려워했다.

대로변 가로수에 달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어느 날 대학교에 놀러 오라던 누나는 캠퍼스 안에 위치한 분식집에서 나에게 돈까스를 사주며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난 사람이 힘들 때 결국 찾고 의지하는 건 가족이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두툼한 돈까스를 먹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후에도 누나는 계속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대학교 성적은 잘 나왔고 얼굴도 점점 이뻐졌지만 표정은 계속 어두웠다. 몇 번인가 남자친구도 사귀었지만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트러블도 심했다. 계속해서 통금시간을 강요하며 일찍 들어오라고 고함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조차도 낯설었다.

분명 어렸을 적의 아버지는 다정하고 결코 화내지 않는 분이었는데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는지 알 수 없었다. 뒤늦게 고향의 친척들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재산분할 문제로 지독하리만큼 길고 힘든 다툼이 이어졌음을 알았다. 집안의 막내이자 고3이었던 나에게는 그런 어른들의 문제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의 대학교로 가면서 누나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게임을 좋아하고 잘했던 내 성향을 살려 게임관련 학과에 지원한 것이다. 대학교 생활은 나에게 천국이었다. 고등학교에선 게임만 잘하는 조용하고 괴짜 학생이었던 내가 게임학과에선 영웅이었다.

남중 남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기 여학생들의 상큼한 샴푸와 화장품 냄새도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대학교에서 여자친구도 사귀고 흔히 잘나가는 인싸들의 그룹에 속하면서 내 인생의 황금기라 단언할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가끔 집으로 내려와 누나를 만날 때면 유독 히스테리를 부리며 소리지르는 누나가 짜증스러웠다. 교회나 학교에선 그렇게 얌전하고 조용하면서 왜 나만 보면 저렇게 기가 살아 난리를 피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서도 최대한 누나를 피하며 대학교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누나가 뭘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어두운 얼굴로 대학교와 교회를 오가며 기도나 하고 있겠지 하는 짐작뿐이었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택시 기사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에 사고가 났는지 차가 너무 막혀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급한 용무가 있으시면 걸어가는 게 빠를 것 같다고 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서두르지 않으면 곧 안치실로 옮겨질 것 같았다. 택시 기사에게 내리겠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점점 빨리 흘렀다.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교를 졸업해 회사에 취업하기 까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서울로 올라와 작은 원룸에 짐을 옮기고 정신 없이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누나도 서울에 올라와 유명 의류 브랜드의 매장에 취업했다. 패션 디자이너를 지망했는데 일단 매장 직원부터 시작해야 한다나 뭐라나.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와 의류 판매점 직원은 전혀 달랐다. 대학교에서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교회에서 정직한 삶을 사는 것만 배운 누나가 생판 모르는 손님을 상대로 서비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리 없었다.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 역시도 끊이지 않는 회사의 야근으로 인해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누나와 나는 각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후 나는 경력을 인정받아 안정적이고 빠른 퇴근시간을 보장해주는 회사로 이직했다. 연봉도 절반 가까이 올라 생활도 윤택해졌다. 누나는 교회에서 만나 5년간 사귄 남자와 결혼했다. 알고 보니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꾼 것도 그 남자의 영향이었다. 그 남자는 누나보다 5살이 많았고 디자인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누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집에서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전업 주부의 삶을 시작했다.

그때쯤에는 누나가 먼저 나에게 연락하는 일이 많았다. 카톡이나 전화로 주말에 시간 있으면 보자는 연락이었는데 대부분 거절했다. 토요일에 여자친구를 만나고 나면 지쳐서 일요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다음날 회사를 나갈 생각에 몸부림을 치며 집에서 빈둥대기 일수였다. 누나는 매번 알았다며 다음에 보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럴 때면 난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알림만 확인한 채 핸드폰을 멀리 던져두고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기 일수였다.



한달 전에는 누나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 어른들이 그렇듯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용무를 묻자 달리 말하지 않았던 누나는 그냥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매형이 출장을 가서 집에 혼자 있어 심심했다나.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며 상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얼굴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누나는 이제 나에게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조차도 조심스러워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누나는 지독히도 약해져 있었다. 그나마 연락하고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들도 결혼한 이후에는 뜸해졌고 대학교며 직장이며 모두 자기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뒤에는 남편뿐이었는데 지방 또는 해외로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아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탄 듯 했다.

한 번은 누나가 살고 있는 집에 갔었는데 서재며 진열장이며 온통 매형의 수집품들로 가득했다. 누나도 좋아하는 것들이라곤 했지만 예전 누나의 취향과는 많이 달랐다. 그 집에서 오롯이 누나가 독점하고 있는 물건이라곤 옷장 가득한 옷들과 신발, 낡은 연습장뿐이었다. 무슨 연습장인지 묻자 누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보여주었다. 예전에 나와 함께 차 안에서 그렸던 낙서 같은 그림이 가득했다. 추억 삼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새 옷이 모두 젖어 무거웠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머리카락에서 쉼 없이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렵게 매형이 말한 병실 호수를 떠올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빗길을 걸어와서인지 몸이 무거웠다. 마음도. 병실 문에 적힌 누나의 이름 석자가 낯설었다. 동명의 다른 사람일 것만 같았다.

낯선 매형의 얼굴이 다가오더니, 나를 안는다. 또, 뭐라뭐라 말한다. 침대에 고요히 곱게 누워있는 누나의 실루엣을 바라본다. 얼굴에 덥힌 천을 벗기자 생기 없는 얼굴이 보인다. 수십 년을 넘게 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이다. 매형은 조심스레 낡은 연습장을 나에게 건냈다. 욕조에 죽어있던 누나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거라고.

군데군데 물기가 스며들어 쭈글쭈글하다. 연습장을 펼치자 물기에 번진 어린 시절의 그림들이 보인다. 커다란 말과 작고 귀여운 쥐, 멍청한 눈을 한 소와 우스꽝스러운 호랑이…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숨이 덜컹거리며 목구멍 위로 치솟아 올라왔다. 커흑거리며 무릎을 꿇고 주먹을 쥐었다.



누나는 왜 우울증에 걸려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 까. 나는 왜 그렇게도 누나를 신경 쓰지 못했을 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진 걸까. 낡은 연습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힘없는 그림으로 다시 그린 동물들의 그림이 있었다. 모두 사이 좋게 붙어서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단지 누나를 상징하는 소만 유독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누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주 커다랗게 피둥피둥 쌀찐 행복한 표정의 소를.



우스꽝스러운 그림이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 후기


평소의 미스테리 스릴러와 달리 조금 서정적으로 써 보았습니다. 직장을 다시 다니니 점점 글쓰기가 힘들어지네요. 그래도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계속 써보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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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저도 일 때문에 글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죽은 듯이 살고 있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두가지 일을 진행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죠. 힘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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